
세삼스럽게 무슨 휴대폰에 대한 비판을 하려는 건가 싶겠지만, 2025년 한국을 방문하며 내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것을 꼽으라면 첫째로 사람들과 휴대폰의 일체다. 몇 년 전만 해도 휴대폰, 아니 스마트폰 없이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낀 순간은, 모든 금융 관련 일들이 스마트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을 때였다. (그전에는 PC만으로도 가능했다.) 아마도 이것은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변화 중 하나였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집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을 보면, (참고로 에코의 에세이는 정말 너무 유쾌하고 시원하다!) 거의 한 챕터가 휴대폰과 인터넷 비판에 관한 글로 채워져 있다. 쓰여진 시기가 15년도 더 전이라는 걸 생각하면, 만약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이 휴대폰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하다.
누군가의 입에 핸드폰을 쑤셔 넣는 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잘라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의 소유물 중에서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을 훼손하는 일이 될 테니까. 그사이 핸드폰은 자연스럽게 우리 육체의 일부가 되었다. 귀의 연장이고, 눈의 연장이고, 심지어 페니스의 연장이기도 하다. 누군가 그의 핸드폰으로 질식시키는 것은 그의 창자로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나 진배 없다. <자, 받아, 메시지 왔어!> 하고 말이다. — 2008년 5월 16일
사람들은 휴대폰과 하나가 되어, 그것을 자신의 육체 일부로, 세상과의 연결로, 더 나아가 세상 그 자체로 인식하는 듯했다. 마치 휴대폰이 없는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못할 것처럼.
한국에 오면 백화점이나 상점을 둘러보며 변화를 살피곤 하는데, 이제는 모든 새로운 전자제품이 휴대폰과 연결되어야 하고, 가구는 휴대폰 거치대를 품고 있으며, 옷의 디자인마저 휴대폰을 수납할 자리를 고려하는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휴대폰과 인간이 일체되어 간다”는 말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대화의 상실이다. 여기서 대화란 반드시 언어적 교환만을 뜻하지 않는다. 길을 걸을 때, 차를 마실 때, 어떤 이유로든 서로 눈을 마주쳐야 할 때 생기는 그 짧은 순간들. 나의 손짓과 발걸음을 눈치채는 사회적 창구.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그 사회적 대화가 이제는 단순히 “사라져 간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제발… 휴대폰을 보면서 “듣고 있어”라고 하지 말고,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해 달라!
그렇다고 해서 휴대폰이 쓸모없다는 말은 아니다. 내일 당장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반납하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휴대폰이 가져온 긍정적인 것들—GPS, 알람, 일정 관리, 팟캐스트, 헬스 트래커, 카메라!—은 이제 없이는 살 수 없는 편리함이 되었으니까. 다만 우리는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면서, 그 속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을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소용돌이 밖의 세상은, 정말 그렇게 놓쳐도 괜찮을까?
중요한 사실은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땅을 보며 걷고, 서로 소통하지 않는 것이 사회적으로 진정한 문제가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은 나올 것이다. 기술은 늘 진화하니까. 앞으로 또 인간이 기술로 인해 어떻게 변해갈지 겁나면서도 기대가 된다.
2001년, 아직 스마트폰이 아닌 휴대폰이 대중화되던 시절, 음악회에서 늘 휴대폰 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음악으로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Golan Levin의 Dialtones: A Telesymphony. 그는 Gregory Shakar, Scott Gibbons, Yasmin Sohrawardy, Joris Gruber, Erich Semlak, Gunther Schmidl, Joerg Lehner와 함께 이 작품을 발전시켰다. 관객들의 휴대폰 번호를 미리 받아 전화를 끄게 하는 대신, 오히려 벨을 울려 시작하는 심포니. 그 우연성과 공간적 분산이 만들어내는 변주는 특별했다.
2025년 지금 이 작품을 다시 들으면, 시간의 흐름과 기술의 변화를 함께 느낄 수 있다. 동시에 그 시절 문제시되던 것들이 지금 와서는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도 보게 된다. 사실 스마트폰 이전에도 문화적 충돌은 늘 있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짜증스러움’과 답답함도 언젠가는 “아, 그땐 그랬지. 좋은 시절이었네. 휴대폰을 손에 들고 걷다니!” 하고 추억할지도 모른다.
예술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중요한 점이 있다. 현시대의 기술을 동반한 예술은 그 시대성을 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들리는 그 벨소리에 담긴 개개인의 기억들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