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분야를 설정하라

안녕하세요~ 세번쩨 글을 올립니다.
조금 늦었지요? 그동안 저도 정신없이 생활하고, 오늘로 짧은 한주의 봄방학을 맞았습니다.
기념으로 저도 시간을 내어 이런저런 정리도 해보고,
다가오는 공포의 프리젠테이션 준비도 해보고
이런저런 생각하다보니, 이번 주제는

‘목표를 정하라’

가 되겠습니다. ^^

물론 여기 오는 분들은 나름대로의 자신의 분야에 대한 계획이 어느정도 서 있는 분들이시거나
이미 그 길로 들어서 많은 공부를 하신 분들이겠지만
지금 공부하며, ‘내가 도대체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소화하고 어떻게 밟아나갈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계신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램으로 글을 써봅니다.

제가 처음 전자음악 공부하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작품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저 주위분들이 하는것들만 보고
아. 이 작품이 좋은데, 저 사람은 이것을 사용했으니 나도 이것을 해야하는가보다..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많은 시행착오를 하는것은 안하는것보다 좋다는 저만의 생각.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이런저런것들을 두루두루 섭렵하는것이 좋다고 봅니다만..
그래도 더 목표를 세워나간다면 좋겠지요.

무엇을 하고싶은가?

여러분이 정말 하고싶은 분야가 무엇인지요?
예를들어, 작품을 쓰는것이 최종목적인것. 연구를 하는것이 목적, 프로그래밍, 알고리드믹 컴포지션, 레코딩등등
자신의 관심분야를 설정하는것이 좋습니다.

작품을 쓰는것이 목적이신분은, 음악적인 구성, 설계,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가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며, 그 방법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하는 구체적인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것을 먼저 공부해야하죠. 이런분들이 예를들어 프로그래밍에 지나치게 구애받거나, ‘나는 기계에 약한데.. 컴퓨터에 약한데.. ‘하는 생각이 스트레스가 될수도 있거든요. 정말 작곡을 하고싶은거라면, 음악적인 표현에 대한 공부가 가장 우선이 되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다음 기술적인 부분은, 자신이 꼭 해야하는 분야를 찾아 공부하고,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많은 도움을 얻는것이 중요하죠. 그리고 그 다음 기술적인 부분들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많이 얻는것이죠. 혼자 모든것을 다 하려고 들면(물론 다 하면 좋기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것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작품 연주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의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경험’입니다.
책과 메뉴얼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는 많은 실험과 연주로 경험을 키우고 노하우를 익히세요. 연주때마다 많은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질문하세요.

반면,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예를들어 무작정 Csound, MAX/MSP, SC3등을 익혀야 한다. 라는 생각보다, 자신이 구현하고 싶은 환경설정을 하는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를들어, Synthesis에 관심이 많다. 라고 한다면,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소스로 다른 방식의 프로그래밍을 하고, 자신만의 라이브러리를 만들어 나가고 기본에서부터 뿌리를 내려, 더 폭넓은 전개를 시키는것이지요. Synthesis, Spectrum, Voice Formant, 등등 자신의 관심분야를 먼저 생각해 본후, 과거 사람들이 어떻게 해 왔는가를 살펴보고, 어떻게 실제 구현되었는가 살펴보고, 자신만의 연구방법을 찾는것이죠.
Algorithmic composition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막연하게 Programming language를 공부하고, 그담에 뭘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실 Algorithmic Composition은 Programing과 많은 관련이 있지만, 음악적인 사용에서 단순하게 Programming만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지요. 실제로 Algorithmic Composition을 사용한 많은 작품들을 분석해보고, 무엇이 Algorithmic Composition인지 확실히 아는것이 중요합니다.
음악가/프로그래머. 이렇게 단순하게 나뉘어 질수 있는 분야 또한 아니듯, Musical Programming을 위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DSP의 경우 또한 그렇습니다. DSP는 전자음악에서 아주 중요한 연구과제임이 분명합니다. DSP책들을 들여다보면 많은 수학공식과 그레프등등에 가슴을 졸여보신 경험들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론공부에 전념하실 분들이라면 하나하나 세심하게 들여다보시고, 어떻게 실제로 구현되는지 알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는것이 중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머리아픈 수학공식에 지나친 시간을 할애하기 보다는, 개념을 익히고, 그것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이해’ 하는 정도라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 ‘이해’라는것은 정말 중요하죠. 이해하지 못한체 사용하다보면, 음.. 글쎄요.. ^^;)
DSP는 이론. 이론은 이론일뿐. 실험보다 중요한것은 없습니다. 실험으로 이해하고, 자신이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분야는 더 깊이 이해해 나가는것이 중요하겠지요.

레코딩과 장비들에 관심 많은신 분들이라면, 스튜디오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것 이외에 더 나은 방법은 없습니다. 직접 기계를 만져보고, 스피커도 여럿 찢어보고(ㅎㅎㅎ), 피드백에 귀도 괴로워보고.. 실제 공연장에서 음향시스템 옆자리에서 서성거리며, 음향기술자 분들께 이런저런 질문도 해보고. 이런것들에 가슴 설레이는 경험들을 키워나가세요. 그것이 최고의 레코딩 전문가. 또는 음향기술자가 되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점은, 우물이 여럿 보인다면, 그중 가장 맘에 드는 우물을 먼저 파고 들어라. 입니다.
이우물 한삽, 저우물 한삽 파다보면 결국 한우물도 제대로 못파고 시간은 흘러버리죠.
시간은 예술가에게 별로 중요한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기왕이면 잘~ 사용하는것이 좋은것이 또한 시간이겠죠 ^^
화이팅입니다!

A Journey of Dmitri Shostakovich(동영상)


A Journey of Dmitri Shostakovich

With the centenary of Dmitri Dmitrievich Shostakovich’s birth (September 26th, 1906 – August 9th, 1975), 2006 marks a revival year for this greatest of Russian 20th century composers. In commemoration of Shostakovich’s life, events are taking place worldwide, including performances, screenings of films including never before heard film scores, films of classic performances of his works, and new and important documentaries.

One such event is the premiere of the documentary A Journey of Dmitry Shostakovich, directed by Okasana Dvornichenko and Helga Landauer (presented as a component of Discovery Day: The Songs of Shostakovich at Carnegie Hall on Saturday, November 11). The film chronicles Shostakovich during a Soviet ‘propaganda cruise’ to the United States where he is forced to act as a cultural emissary, lauding the political structure of his country, (carefully escorted by several party ‘handlers’). Shostakovich’s relationship to the Russian authorities, and what his personal convictions were in regards to the Communist Party have never been fully appreciated by the West. While this issue should have been put to rest with the 1979 publication of Shostakovich’s memoirs entitled Testimony, the true message of his life’s work has yet to gain universal consensus.

Dmitri Shostakovich was born in St. Petersburg, the arts capital of Russia at the time. At the age of nine, he was recognized as a child prodigy pianist and composer. After the success of his first symphony (written as a graduation piece at the Petrograd Conservatory), Shostakovich became world-renowned. But the landmark event of his early career occurred after the premiere and phenomenal success of his second opera, Lady Macbeth of the Mtensk District.

In 1936, an article was published in Pravda (written by Stalin) that criticized the work as too dissonant, and essentially threatened Shostakovich’s life if he continued this trend.

This w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compositional output, after which (in order to survive) he focused on concert works eventually composing 15 symphonies, several concertos, and 15 string quartets, and numerous other works including film scores, and songs. The polysemic potential of instrumental concert music would become a defining aspect of Shostakovich’s output during the Stalin years in that he could compose music satisfactory to the ideological requirements of Politburo, while in reality expressing the terror, fear and despair of the Russian people.

The most famous example of this is the 5th symphony, which Shostakovich described to the Party members who previewed it for suitability as “joyous and optimistic”. It was obvious though to the audience at the work’s premiere that the symphony was about the Great Terror: many audience members wept during the third movement, and the work received a one-hour standing ovation.

The 4th and last movement is about an obvious musical representation of the Soviet Juggernaut as there ever was. Similarly, the first movement of the 7th Symphony, a.k.a. the ‘Invasion Theme’, was generally considered at the time to be representative (patriotically) of Hitler’s invasion of Russia, but actually represents the spread of communist ideology through the Russia like a cancer spreading through its host.

As part of an ongoing effort to portray a more liberal attitude towards the arts, Nikita Khrushchev appointed Shostakovich as chairman of the Russian Union of Composers in 1960. In order to accept the position, Shostakovich had to join the Communist Party despite a previous vow never to join.

The self-loathing engendered by this decision drove Shostakovich to the point of suicide, and his String Quartet No. 8 was to be his epitaph.

Dedicated “To the Memory of the Victims of Fascism and War” (namely Dmitri Dmitrievich Shostakovich) the work is entirely autobiographical, and was composed in three days. Fortunately Shostakovich didn’t kill himself with sleeping pills in 1960, and lived until 1975, dying of cancer likely caused by chain-smoking cardboard tipped Russian cigarettes his whole life.

As Dvornichenko’s and Landauer’s new documentary illustrates through the juxtaposition of Soviet propaganda films with Shostakovich-the-dissident’s words and music, his life and work present a defining example of singular artistic vision persevering against life-threatening political forces. We can finally appreciate his music as a canvas upon which has been painted the fear, despair, suffering, and hope of generations.

Like all great composers, Shostakovich was a mirror of his time, and ultimately a Shaman who spoke with grace and fluency through the mystical language of sound directly to the hearts and minds of the Russian people, and through time to us, perhaps offering us a warning about the abdication of freedom and the grave consequences of totalitarian power.

전자음악의 역사체험

오늘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공연장 Muziek Gebouw 에서 Live electronics Festival 첫 공연을 보러 암스테르담에 갔었습니다.

제 개인 스케줄때문에 어쩔수 없이 오늘만 가게 되었지만, 나름 좋은선택이었어요.

오늘의 공연은 60~70년대 유명한 작품들의 연주였습니다.
그중에서 Alvin Lucier의 I am sitting in a room(1969)와 Christian Wolff의 For 1, 2, or 3 people (1964), Steve Reich의 Pendulum Music(1968)을 직접 들을수 있었다는것에 아주 큰 의미를 두었어요.

Alvin의 작품은 두개의 릴테입을 이용하여 소리를 지속적으로 녹음하며 피드백시켜서 변형시키는것인데, 릴테입 공연을 본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두번째 Christian의 작품은 그야말로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와 당시 전자음악으로서는 엄청난 시도들을 했던 여러 소리들. 지금 들으면 웃음이 나올정도로 아주 유치한 오실레이터를 통한 싸인웨이브까지.

그리고 세번째 Steve의 천장에 매달린 마이크 4대의 진자운동을 통한 피드백 사운드.
지금보아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닐수 없었어요.

글쎄요. 씨디로야 접할수 있는 음악들이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수 없는 장면이기에 더 의미있었습니다.
고전음악이야 많이 연주되고있지만, 이처럼 역사에 남을 몇개의 작품들은, 전자음악 학도들이 접할수 있는 기회가 없을뿐더러.. 아예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모르는 학생들도 많이 있는것이 사실이지요.
한국에 전자음악이 깊이있게, 그리고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려면, 이와같은 옛(?)작품들의 연주 또한 학생들에 의해서 이루어 져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새로운 음악의 연주는 많이 이루어 지고 있지만,
작곡공부 하는사람이 모짜르트 베토벤 음악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것 처럼, 전자음악 학도들도 역사속의 명곡들을 직접 연주하고 공부해 보아야 하는게 원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한가지. 제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연주회장에서 청중으로서의 참여입니다.
이곳사람들은 우스운 소리가 나면 주저없이 웃더군요. 아주 자유롭고, 자기 표현을 확실히 하고. 그런것이 공연의 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구요.

한국 판소리 음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것이 관중의 추임새죠. 우리의 전통에는 관중의 참여도로 공연의 수준을 알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관객의 반응에 따라서 연주자의 실력이 바로바로 판가름 되기도 하였죠.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공연의 관객은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예절바른(?)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야유, 웃음, 큰 박수. 이 모든것이 음악회의 질을 결정하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곳에서 음악회를 접할때마다, 한국의 사정과 많이 비교를 해 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점. 받아들여야 할 좋은점들은 받아들이려는 노력과 그런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본 친구들과 함께가서 공연 동영상은 찍지 못했지만, 음악회 주변 분위기나 공연장의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그 친구가 에디팅 하여 준다 하였으니 나중에 동영상도 올려보도록 할께요.

그럼 또 뵙지요~! ^-^
한국 전자음악계의 무궁한 발전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