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년 선생님

그녀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해금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루의 바쁜 업무 일과가 끝나고 항상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찾는다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한 은행원도 그 중 하나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이 고요히, 그러나 수런거리며 흐르는 것을 느끼지조차 못했다. 어쩌면 그녀는, 꼭 자신의 음악 같기도 했고, 그가 설명하는 그의 고향 영동의 이미지와 닮아있기도 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자연과, 정수년 본인과, 그리고 그의 음악은 모두 하나처럼 보였다.
  
  

도무지 봄이 올 것 같지도 않을 것만 같이 추운, 2월 막바지에 다다른 오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그의 방을 찾았다. 꽃병이 화사하게 놓여있었고, 그가 따뜻한 차를 끓여주었다. 마음이 확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후에, 꽃병의 주인이 찾아왔다. 알고 보니 꽃병, 꽃 화분 몇 개가 모두 빌린 거였다. 빌려준 선생님이나, 빌린 선생님이나 모두들 민망하게 웃는데, 기자는 그 분위기가 퍽 좋았다. 꾸밈없고 정겹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박연의 고향 영동, 음악의 근간을 이루다

오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정수년은 형제간의 터울이 커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는 그를 그렇게 예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두 분다 일 하시고, 언니 오빠들이 공부하러 멀리 가면 늘 혼자였다. 조선 시대의 음악가 박연의 고향 영동은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곳’이었다. 서울과 부산의 중간에 위치해 우등열차(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구분했다고)가 서는 곳이었고, 그래서 도회지의 물결이 조금씩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영동은 폐쇄적인 곳이기도 했다. 폐쇄와 들뜬 개방의 공기가 공존하는, 이상한 공간. 그 공간은 지금까지도 그의 음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감꽃이 떨어지면 감꽃을 꿰며 놀기도 했고, 친구들과도 가끔 어울렸지만, 가장 좋은 건 하늘을 보는 거였다. 파란 하늘도 좋고, 별이 뜬 밤하늘도 좋았다. 별에 매료되어 별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별들의 신비를 음악에 담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해금으로 큰 상(전국국악경연대회 1등)을 타게 되었다. 너무나도 내성적인 그에게 있어 그건 큰 사건이긴 했던 모양이다. 자신감을 얻고, 서울에 있는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렇게 두 줄로 줄여버리기에는 이 일은 정말이지 그에게 큰 사건이다. 이 이야기를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들려주는 정수년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해금연주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소박해서 현실감이 오히려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정수년이고, 그 나지막함이 바로 음악이 되었으니, 그의 음악으로 위로를 받는 이들은 그 성격에 감사할 일이다.

무덤이라도 파헤치고 싶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국악고등학교 연습실에서 바라보는 남산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렇게, 서울살이에 익숙해지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아버지의 오래된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낡은 사진 속에서 정수년의 아버지는, 바이올린을 들고 있었다. 찰현 악기에 대한 애정은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것인가.

“아버지 이마에 푹 패이는 굵은 주름이 있었어요. 그 이마를 만지는 걸 내가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손에 남아있는 그 이마의 감촉이 여전히 생생한 거에요. 무덤을 파헤쳐서라도 다시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무대에 서는 그의 가장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여전히 올라서면 떨리는 무대,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음반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기자 또한 그 중 한 사람이고, 채근하듯 언제 내실 거냐고 물었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지만 해금에 대한 욕심만큼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는 쉽게 음악을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음반을 낸다면 1집보다 나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1집을 냈을 때는 아주 소박한 마음으로 냈는데, 그게 다른 해금 연주자들 혹은 학생들한테 이러저러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지요. 꽃별(해금 연주자)이도 2집까지 냈고. 무엇보다도 선생이라는 신분 때문인지, 해금 연주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음악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해금 소리의 빛깔, 무수한 경계들, 꿈틀거림.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그의 1집에서 가장 사랑 받고 있는 곡의 서정성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음악들은 해금의 깊은 소리, 어두운 소리까지 끄집어낸다. 가끔은 늪처럼 사람을 침잠시키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침묵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기도 하는 그의 음악적 빛깔은, 그가 생각하는 해금 소리의 빛깔을 구현하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일 것이다.

“해금 소리가 좋았던 것은 그것이 복합적인 빛깔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밝음과 어두움 사이에 무수한 경계들이 있듯이, 혹은 산이 높다가도 낮아지고, 낮다가도 높아지는 꿈틀거림을 포함하고 있듯이, 그런 것들이 바로 우리 음악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이 제 목표에요.”

이번 정동극장에서 가질 공연 때문에 이런저런 고민들을 갖고 있는 정수년, 그가 특히 이번 무대를 통해 들려주고 싶은 곡은 강준일 곡의 ‘소리그림자’라고. 그가 생각하는 ‘우리 소리의 빛깔’을 보여줄 수 있는 곡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순간 너무 평범해 보이다가도(그래서 자꾸 인터뷰라는 것을 깜박하곤 했다), 끝 모를 깊이를 드러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런 대목은 그의 놀라운 뚝심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는 스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어요. 때문에 대중들이 원하는 음악만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창작곡을 통해 해금의 가능성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어요.”

그가 어느 아침, 해금의 소리를 내어 보다가 왈칵 눈물을 쏟았듯이, 그의 음악은, ‘왈칵’의 느낌을 주는 한 순간을 제공한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노동과 사람, 삶이 마음 속에서 그려지고,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수런거림과 고요가 공존하는 이상한 순간이다. 해금은, 우리 음악은 그런 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 발견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던 정수년은 더 깊은 곳을 향한 항해를 준비중이다. 정동 극장에서 우리는 그가 발견한 해금의 아름다움과 나아갈 깊은 곳의 원경을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티켓링크 / 남궁경 기자  

가야금 주자 이지영

“수런거리는 우리문화, 풍류와 전통 바로 세워야”

정악 가야금으로 고유문화 되살리는 선봉장

한 꼬마가 한복 차림에 족두리를 쓰고 제법 의젓하게 가야금을 탄다. 한 여인이 가야금 현에 손을 얹고는 미소 짓고 있다. 족히 30년은 넘는 시간의 간격을 보여주는 두 사진은 결국 한 사람의 영상이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의 존재 행태는 아예 타인이나 다름없다. 3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둘 사이의 음악적ㆍ미학적 거리는 대척점이라 해도 좋다. 두 번째 앨범 ‘8개의 정경’(C&L 뮤직)에 수록된 두툼한 해설지 속의 사진 두 장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CD에 수록된 여덟 곡은 광대한 신지평을 펼쳐 보인다.

한여름 연습실의 망중한일까. 두 가야금을 나란히 비교해 볼 수 있는 그림을 담고 싶었던 사진 기자의 요구에 이래저래 포즈를 취하는 그녀의 모습에 연습중이던 단원들이 숫제 환성까지 지르며 분위기를 띄운다. 날렵한 산조(散調) 가야금을 껴안더니, 평소 자신의 모습과 왠지 어긋난다는 듯 수줍게 웃고 마는 이지영(39ㆍ용인대 국악과 교수). 옆에는 자신보다 키가 큰 또 하나의 가야금이 있으니, 이름하여 법금(法琴) 가야금. 정악(正樂) 가야금이라고 한다.

– 현대적인 맛으로 되살리는 고유의 멋

가야금 하면 열에 아홉은 산조 가야금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그는 바로 저 무뚝뚝한 표정의 정악 가야금으로 고유 문화를 되살리는 선봉장이다. 거기에는 퓨전이란 이름 아래 제 모습을 잃어 가는 우리 풍류의 전통을 바로 세운다는 의기와, 고유의 멋을 현대적인 맛으로 되살려 낸다는 자부심이 함께 하고 있다.

  

“공연을 앞두고 매일 오후 8시부터 3시간씩 연습하고 있어요.” 물론 합동 연습만 해도 그렇다는 말이다. 올여름도 제대로 쉬기는 글렀는가 보다. 자신이 이끄는 한국현대음악앙상블(Contemporary Music Ensemble KoreaㆍCMEK)의 발표회가 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만들어 6년째 이끌어 오고 있는 이 앙상블은 국악기 5대(가야금, 대금, 피리, 생황, 타악)와 양악기 4대(첼로, 클라리넷, 타악, 기타)로 편성돼 있는 독특한 단체다.

  

국악과 양악의 퓨전을 내건 연주단은 이제 낯설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명클래식 작품을 국악기로 연주 취입한 CD를 여반장으로 구할 수 있다. 일본이나 중국의 전통 악기 연주자들이 먼저 해 온 일 아니던가. 그러나 이처럼 1 : 1(정통:창작)의 비율을 의식적으로 내걸고 각 분야의 정상급 연주자들을 모았다는 점, 정상급 현대 작곡가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실험적인 작품을 잇달아 초연하는 단체는 없다.

  

이 악단은 작곡가가 실험적이든 의욕적이든, 그들이 여하한 테크닉을 요구하더라도 거뜬히 소화해 내는 솔리스트들로 이뤄져 있다는 정평이 나 있다. 현대 음악 작곡가들로서는 참으로 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국악과 양악, 모두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예를 들어 김정승(32ㆍ대금)은 국립국악원 정악단으로서 전통과 현대 음악에 두루 능통하다. 멀티폰(한 호흡으로 두 소리를 동시에 내는 주법), 순환 호흡(연주음을 끝없이 지속시키는 주법) 등 관악기로 구사할 수 있는 초절기교를 한몸에 체득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다. 또 박정민(35ㆍ첼로)은 서양 악기 주자이지만 국악기와 가장 많이 협연해 오고 있는 주인공으로 그 같은 음악적 여정이 10년을 웃돈다. 그가 얼마나 신뢰 받는 주자인가 하는 점은 현대음악의 세계적 거장 펜데레츠키가 그를 염두에 두고 새 첼로 협주곡을 작곡해 초연까지 의뢰했다는 사실이 웅변한다.

  

그들이 모여 지난해 8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가졌던 정기 발표회 무대는 감동의 도가니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머쓱할 정도였다. 발표된 11곡에는 춤과 연기도 포함돼 있었다. 덜구춤(관을 묻고 당을 다지는 춤)과 상여 놀이 등 평소에는 제자리를 지키며 연주만 하던 국악과 클래식 주자들이 펼쳐 보이는 뜻밖의 연극적인 시도에 객석은 더 이상 즐거울 수 없었다. 악(樂)이 가(歌)와 무(舞)와 함께 어우러지는 풍류의 정신에 사이버 시대는 더 이상 냉정해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본연의 모습에 충실할 생각이예요.” 과유불급(過猶不及)임을 알기 때문이다. 5곡을 헤아리는 신작들의 음악적 논리에 집중하는 무대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박동욱 강준일 조인선 임준희 등 국내 작곡가들의 작품은 물론, 뉴질랜드 작곡가 딜런 나르델리가 자신을 염두에 두고 초연을 의뢰한 작품까지 있기 때문이다. “가야금의 재료인 오동나무를 뜻하는 ‘Paulownia’라는 곡이죠.” 국악기(가야금, 대금)와 양악기(기타,첼로, 비올라)가 어울려 만드는 “ 아름다운 현대음악”이라 한다. 바로 자신의 음악적 목표다. 가야금은 그를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는 최초의 가야금 박사(실기)다. 1997년 이화여대 황병기 교수의 문하에서 득한 박사 학위가 그것이다. 실제 연주자에게 박사 학위가 뭐 그리 대단할까, 하고 묻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전통적 산조 연주를 기교적으로 통달하는 것이 가야금 실기의 끝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던 상황에서 그는 가야금 연주에 철학이 있다는 점에 파고 든 것이다. 그것은 결국 본인의 말마따나 “평생 구도자가 되는 길”이다. 길은 어떻게 시작됐던가?

  

불국사 바로 앞동네에서 태어났다. 왕릉은 그의 놀이터였고, 때로는 뒷간이었다. 어려서부터 예능쪽으로 재능을 보였던 그를 눈여겨 보고 있던 부친은 당시 경주 시내의 인간문화재급 전통 음악인 이말양 선생을 찾아 가 딸을 제자로 삼게 했다. 기생 조합인 권번(券番)에서 선생이 익힌 가야금, 판소리, 고전 무용(승무ㆍ살풀이 등) 등 전통 기예가 고사리손으로 흘러 들어 왔다. “언젠가는 한국 음악이 빛을 본다고 말씀하시던 아버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 지금은 출입 금지된 안압지에서도 공연했고, ‘ 신라문화재상’ 등이 줄줄이 따랐다.

  

7살때 서울로 와 초등학교에 들어 간 그는 공부라곤 해 볼 틈이 없었다. 국악 콩쿨상은 독식하다시피 한 그는 정규 학과는 돌아볼 틈이 없었다. 3학년때 처음으로 전바탕 연주를 이뤘다. 성금연류. 예술학교인 선화중에 가야금 전공으로 입학한 그는 산조ㆍ정악ㆍ창작 음악 등 당시 가야금에 요구됐던 음악 장르를 다 떼냈다. “국립국악원에 계시다 정년 후 후학을 지도하신 가야금 정악의 대부 최충웅 성생님 덕분에 정악의 뿌리는 튼튼하다고 자부해요.” 이 무렵 녹음해 둔 자신의 연주는 그가 3년 전에 종합 편집해 3장의 CD로 구워 내 보관중이다.

  

선화예고에서 남성적인 김병호류의 산조를 체득해 튼실한 토대를 마련한 그는 서울대 음대 84학번으로 입학해 김정자 선생의 아래서 혹독한 단련 기간을 견뎌냈다. 26세, 그는 정악 실내악단으로 최고의 연주단인 정농악회에 최연소로 입단했다. 1988년 대학원으로 들어 가 이재숙 선생을 모신 그는 이듬해 ‘흙담’을 연주해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연주가 불가능한 작품이라는 통념탓에 악보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곡을 최초로 실연해 보인 것이다. 졸업 직후 들어 간 국립국악원에서의 연주 역시 화제를 모았다.

  

– 전통악기와 서양음악의 만남

1993년 정농악회가 후원했던 행사 ‘베를린 – 서울 페스티벌’에서 독일 작곡가 클라우스 후버가 가야금을 위해 지은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현대 음악과의 만남을 화두로 삼게 됐다. 1994년 국악원에서 펼쳤던 ‘개량 가야금의 밤’에서 활짝 발현된 이래 이렇듯 다양한 울림으로 이어져 오는 바다. 18현, 21현 가야금이 한자리에서 연주된 최초의 사건이었던 그 날 밤의 경이는 1996년 장흥 토탈미술관에서 펼쳐졌던 ‘가야금을 위한 현대 음악’으로 이어졌다. 그는 거기서 자기 평생을 걸만한 일을 발견한 것이다.

  

1998년 독일에서 벌어졌던 ‘코리언 페스티벌 – 동시대의 한국 음악 연주회’. 전통 악기로 난해한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그 자리에서 그는 객석으로부터 5회에 걸친 커튼콜을 받았던 것이다. “내 평생의 일이라는 점을 확신한 계기였어요. 동양의 전통 악기로 현대 음악을 연주하는 작업에 함축된 거대한 가능성을 본 거죠.”

  

동양의 전통 악기와 서양 음악의 만남은 음악의 이름으로 21세기가 할 수 있는 거대한 실험이다. 그러나 한국은 하드웨어적으로 너무나 미흡하다.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가 일본의 피리 샤쿠하치를 위해 신곡을 헌정한 것도, 도쇼 호소카와 등 일본의 유명 클래식 작곡가가 자국의 전통 악기를 위한 작곡을 마다 않는 것도 모두 정부의 적극적 지원 덕이라는 설명이다.

  

음악에 관한 한 그는 철저한 완벽주의다. 요즘도 그는 연습을 많이 한 날이면, 자다가 앓기도 한다. 남편 김성철(44ㆍ사업)씨와의 사이에서 난 딸 김항아(10)가 “어머니의 가야금 산조에 신물 날 정도”라고 할 정도다. 수업 시절 밤 새워 공부할 적에는 엄지손가락이 물집과 굳은살 등으로 성한 날이 없었다. 뿐만 아니다.

  

‘거친 붓끝’의 작곡자 클라우스 후버로부터 음반 제작의 찬성을 얻기 위해서는 팩스, 이메일, 전화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야 했다. 답장을 기다리는 데 몇 달씩 걸리다 보니, 법적 절차를 모두 마치는 데 든 시간이 4년. “연주 방식 등 세션?부분까지 자기가 말한대로 하지 않으면 허락하지 않겠다고 하는 통에 많은 시간이 걸린거죠.” 후버가 보내 준 설명 그대로 재킷에 수록한 이번 음반에 대해 작곡자는 물론 그의 부인까지 매우 흡족해 한다는 것.

  

딸은 그 각고의 세월을 모른다. 2005년 9월 베를린의 콘체르토 하우스의 ‘한국 전통 악기로 연주하는 현대 음악 연주회’ 무대에 나가 청중을 휘어 잡을 어머니의 모습이 있기까지의 숨은 세월을. “다음 음반이요? 정통 산조로 내고 싶어요.” 1집 ‘이지영 가야금 보허사’는 정악, 2집은 현대음악, 3집은 산조라니. 그의 예술적 정-반-합일까?

  

장병욱 차장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German poet, novelist, playwright, courtier, and natural philosopher, one of the greatest figures in Western literature. In literature Goethe gained early fame with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1774), but his most famous work is the poetic drama in two parts, FAUST. Like the famous character of this poem, Goethe was interested in alchemy. He also made important discoveries in connection with plant and animal life, and evolved a non-Newtonian and unorthodox theory of the character of light and color, which has influenced such abstract painters as Kandinsky and Mondrian.

Noble be man,
Helpful and good!
For that alone
Sets him apart
From every other creature
On earth.
(from The Divine, 1783)
Johann Wolfgang von Goethe was born in Frankfurt am Main, the first child of a lawyer Johann Caspar Goethe, and Katherine Elisabeth Textor, the daughter of the mayor of Frankfurt. Goethe had a comfortable childhood and he was greatly influenced by his mother, who encouraged his literary aspirations. After troubles at school, he received at home an exceptionally wide education. At the age of 16, Goethe began to study law at Leipzig University (1765-68), and he also studied drawing with Adam Oeser. An unhappy love affair inspired Goethe’s first play, The Lover’s Caprice (1767). After a period of illness, Goethe resumed his studies in Strasbourg (1770-71). Some biographers have speculated that Goethe had contracted syphilis – at least his relationships with women were years apart. Goethe practised law in Frankfurt (1771-72) and Wetzlar (1772). He contributed to Frankfurter Gelehrte Anzeigen (1772-73), and in 1774 he published his first novel, self-revelatory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in which he created the prototype of the Romantic hero. The novel, written in the form of a series of letters, depicted the hopeless affair of a young man, Werther, with the beautiful Charlotte. In the end the melancholic Werther romantically commits suicide, after one brief moment of happiness with Charlotte, when she lets him kiss her. Goethe’s model was Charlotte Buff, the fiancée of his friend, whom he had met in Wetzlar in 1772.

Goethe’s youth was emotionally hectic to the point that he sometimes feared for his reason. He was recognized as a leading figure in the Sturm und Drang, which celebrated the energetic Promethean restlessness of spirit as opposed to the ideal of calm rationalism of the Enlightenment. Goethe’s poem ‘Prometheus’, with its insistence that man must believe not in gods but in himself, might be seen as a motto for the whole movement. After a relaxing trip to Switzerland, Goethe made a decisive break with his past. In 1775 he was welcomed by Duke Karl August into the small court of Weimar, where he worked in several governmental offices. Occasionally he read aloud his texts to a selected group of persons – among them the Duke and the two Duchesses. To his disappointment a dog-trainer was also allowed to amuse in the court theatre.

“What you don’t feel, you will not grasp by art,
Unless it wells out of your soul
And with sheer pleasure takes control,
Compelling every listener’s heart.
But sit – and sit, and patch and knead,
Cook a ragout, reheat your hashes,
Blow at the sparks and try to breed
A fire out of piles of ashes!
Children and apes may think it great,
If that should titillate your gum,
But from heart to heart you will never create.
If from your heart it does not come.”
(from Faust I)
In Weimar Goethe did not have much time to publish fiction. He was a council member and member of the war commission, director of roads and services, and managed the financial affairs of the court. Also Goethe’s scientific researches were wide. He discovered the human intermaxilarry bone (1784), and formulated a vertebral theory of the skull. His idea of Urpflanze, the archetypal forms after which all other plants are patterned, has similarities with Plato’s theory of eternal and changeless Forms. In general, Goethe’s metaphysics and organic view of nature showed the influence of Spinoza.

During this period, his great love was Charlotte von Stein, an older married woman, but the relationship remained platonic. Eventually Goethe was released from day-to-day governmental duties to concentrate on writing, although he was still general supervisor for arts and sciences, and director of the court theatres. After Goethe’s emotional dependence on Charlotte ended, he lived happily and unmarried with Christiane Vulpius, who became Goethe’s mistress in 1789. In spite of public pressure, it was not until 1806 when they married.

In 1786-88 Goethe made a journey to Italy. “In Rome I have found myself for the first time,” he wrote. He drew statues and ruins, collected antique and botanical samples, and was shocked by the primitive power of an ancient Greek temple – Renaissance art did not interest him. The journey ended Goethe’s celibacy and inspired his play IPHIGENIE AUF TAURIS, and RÖMISHE ELEGIEN, sensuous poems relating partly to Christiane. The ancient monuments he saw in Italy significantly influenced his growing commitment to a classical view of art. “Three things are to be looked to in a building,” Goethe later wrote in Elective Affinities (1808), “that it stands on the right spot; that it be securely founded; that it be successfully executed.”

In the 1790s Goethe contributed to Friedrich von Schiller´s journal Die Horen, published WILHELM MEISTERS LEHRJAHRE (Wilhelm Meister’s Apprenticeship) in 1795-96, and continued his writings on the ideals of arts and literature in his own journal Propyläen. Wilhelm Meister’s story had preoccupied the author for many years. Wilhelm, disillusioned by love, starts actively to seek out other values, and becomes an actor and playwright. Whereas Werther’s life ended in despair, Meister has a more optimistic spirit. At the end he says: “… I know I have attained a happiness which I have not deserved, and which I would not change with anything in life.” Wim Wenders and Peter Handke made in 1974 a modernized film adaptation of the book, Wrong Movement, in which Meister’s journey has a sad, lonely note. “If only politics and poetry could be united,” he says to his friend Laertes, who answers: “That would be the end of longing and the end of the world.”

During the French Revolution Goethe reported in letters – sometimes written in the middle of cannon fire – to his family his inconveniences, complaining that he was forced to leave his home and dear garden after the French army attacked Prussia. He also saw killings and looted villages. Although Goethe supported freedom and progress, he wanted to preserve the bourgeois or his artistic-individualistic way of life. However, the majority of the German intelligentsia greeted with enthusiasm the goals of the revolution, including Kant, Schiller, and Friedrich Schlegel.

Faust is an alchemical drama from beginning to end, claims C.G. Jung. Goethe worked for most of his life on this masterwork. He started to compose Faust about the age of twenty-three, and finished the second part in 1832, just before his death. The original figure in the Faust legend was Gregorius Faustus (or Gregorius Sabellicus, Faustus Junior, c1480-1510/1), a seeker of forbidden knowledge. His true identity is not known, but he claimed to be an astrologer, expert in magic, and an alchemist. This legend attracted Christopher Marlowe, who offered in his play a psychological study of the battle between good and evil. Marlowe’s drama ends with the protagonist’s damnation. Goethe’s story created a new persona for the Devil – Mephistopheles was a gentleman, who had adopted the manners of a courtier. Faust’s lust for knowledge is limitless and he makes a contract with Mephistopheles: he will die at the moment he declares himself satisfied, if he should exclaim, “Stay, thou art so fair.” When Werther believed that his passion for beauty is fulfilled in afterlife, Faust wants to enjoy his highest moment in this life.

In the first part, published in 1808, Faust seduces and loses Margaret (in German, Margarete, or its diminutive, Gretchen), an innocent girl, who is condemned to death for murdering her illegitimate child by Faust. When she asks Faust, “Do you believe in God?”, he answers: “Does not the heaven vault above? / Is the earth not firmly based down here? / And do not, friendly, / Eternal stars arise? / Do we not look into each other’s eyes, / And all in you is surging, / To your head and heart, / And weaves in timeless mystery, / Unseeable, yet seen, around you?”

In the philosophical second part Faust marries Helen of Troy and starts to create an ideal community. Harold Bloom has said in The Western Canon (1994), that the monstrously complex poem is a “scandalous pleasure for the exuberant reader, but it is also a trap, a Maphistophelean abyss in which you will never touch bottom.” Without knowing that his plans have failed, the blind Faust is finally satisfied. However, Mephistopheles loses his victory, when angels take Faust to heaven. – Faust versions: Gotthold Lessing’s (1729-1781) lost play Faust, Don Juan/Don Giovanni (perhaps best known from the Opera by Lorenzo Ponte and Wolfgang Amadeus Mozart), Oscar Wilde’s novel The Picture of Dorian Gray, Dorothy L. Sayers’s play The Devil to Pay (1939), Thomas Mann’s novel Doctor Faustus (1947). – Film adaptations: 1926, dir. by F.W. Murnau; film All That Money Can Buy, 1941, dir. by William Dieterle, based on Stephen Vincent Benét work; 1949, dir by René Clair (La Beauté du Diable); 1974, dir. by Brian DePalma (Phantom of the Paradise, based loosely on Gaston Leroux’s novel Phantom of the Opera). – Opera: Gounod’s Faust (1859), Buïto’s Mefistotele (1866), Berlioz’s La Damnation de Faust (1893), Busoni’s Doktor Faust (1925) – Animation: 1994, dir.by Jan Svankmaijer.

From 1791 to 1817 Goethe was the director of the court theatres. He advised Duke Carl August on mining and Jena University, which for a short time attracted the most prominent figures in German philosophy, including Hegel and Fichte. In 1812 Goethe met the famous composer Ludwig van Beethoven in Teplitz. Beethoven had admired Goethe already in his youth, although he considered Goethe’s attitude toward the nobility too servile. Beethoven composed several music pieces based on the author’s texts, among them Egmont. Franz Schubert’s (1797-1828) first Lieder masterpiece, ‘Gretchen am Spinnrade’, took the words from Faust, but Goethe did not much appreciate Schubert’s musical achievements.

Goethe remained creative during his last period. He edited Kunst and Altertum (1816-32) and Zur Naturwissenschaft (1817-24), wrote his autobiography, Poetry and Truth (1811-1833), and completed the novel WILHELM MEISTERS WANDERJAHRE (1821-9). Interested in visual arts throughout his life, Goethe wrote a large volume on the theory of color, which he considered one of his major achievements. In ZUR FARBENLEHRE (1810) Goethe rejected mathematical approach in the treatment of color, and argued that light, shade and color are associated with the emotional experience – “every color produces a distinct impression on the mind, and thus addresses at once the eye and feelings”.

At the age of 74 Goethe fell in love with the 19-year old Ulrike von Levetzow. He followed her with high hopes from Marienbad to Karlsbad, and then returned disappointed to Weimar. There he wrote The Marienbad elegy, the most personal poem of his later years. Goethe died in Weimar on March 22, 1832. He and Schiller, who died over a quarter of a century earlier, are buried together, in a mausoleum in the ducal cemetery. The Goethe House and Schiller House stand in the town, and the two statues of these literary giants are outside the National Theatre.

For further reading: Goethe: The Poet and the Age. Vol. II. by Nicholas Boyle (2000); Unterirdische Gänge. Goethe, Freimaurerei und Politik by W. Daniel Wilson (1999); Das Goethe-Tabu by W. Daniel Wilson (1999); Christiane un Goethe by Sigrid Damm (1999); Goethes “Werther”: Kritik und Forschung by Peter Hans Herrmann (1994); Goethe: The Poet and the Age. Vol. I. by Nicholas Boyle (1991); Wilhelm Meister: Das Ende der Kunst und die Wiederkehr des Mythos by Hannelore Schlaffer (1989);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by Martin Swales (1987); Goethe’s Faust: A Critical Reading by L. Dieckmann (1972); Goethe’s Novels by Hans Reiss (1969); Goethe’s “Die Wahlverwandtschaften”: A Literary Interpretation by Harry George Barnes (1967); Goethe: A Critical Introduction by H. Hatfield (1963); Goethe: A Psychoanalytic Study by Kurt Eissler (1963); Goethe-Bibliographie (1955-, serial); Goethe’s “Wilhelm Meister” by Karl Schlechta (1953); Goethe, The History of a Man, 1749-1832 by E.Ludwig (1928); The Life and Works of Goethe by G.H. Lewes (1855); Gespräche mit Goethe by Johann Eckermann (1836) – Museums: Johann Wolfgang von Goethe’s House (Goethehaus), Am Frauenplan 1. Goethe lived there for fifty years. – Johann Wolfgang von Goethe’s Summerhouse, im Park an der Ilm. Goethe started there Iphigènie. In Weimar is a copy of Goethe’s Gartenhaus; also the furniture and other details follow the original. – Suomeksi on julkaistu mm. kaksi laitosta Valittuja teoksia, ensimmäinen 1932 (8 osaa) ja toinen 1956 (3 osaa) sekä Goethen elämäkerta V.A. Koskenniemen kirjoittamana.
Selected works:

GÖTZ UND BERLICHINGEN, 1773 – Iron Hand (trans. among others by W. Scott) – suom. –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1774 –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 Nuoren Wertherin kärsimykset, suom. Volter Kilpi (1904)
IPHIGENIE AUF TAURIS, 1787 – Iphigenia in Tauris – Iphigenia Tauriissa, suom. Eino Leino (1910)
EGMONT, 1788 – trans. – suom. J.A.Hollo
RÖMISHE ELEGIEN, 1790 – Roman Elegies
FAUST, EIN FRAGMENT, 1790 – trans.
TORQUATO TASSO, 1790 (see the myth that Tasso was imprisoned because of his love for Duke Alfonso’s sister Leonoro) – suom. (1913) Juhani Siljo
WILHELM MEISTERS LEHRJAHRE, 1796 – Wilhelm Meister´s Apprenticeship (Thomas Carlyle’s translation in 1824) – Wilhelm Meisterin oppivuodet – film Wrong Movement (1974), dir. by Wim Wenders, screrenplay by Peter Handke, starring Rüdiger Vogler, Hanna Schygulla, Hans Christian Blech, Peter Kern
HERMANN UND DOROTHEA, 1797 – Hermann and Dorothea – Herman ja Dorothea
FAUST I, 1808 – trans. – suom. Valter Juva (1916), Otto Manninen (1936)
DER WAHLVERWANDTSCHAFTEN, 1809 – Elective Affinities – Vaaliheimolaiset, suom. J.A. Hollo
ZUR FARBENLEHRE, 1810 (3 vols.) – Theory of Colors
ITALIANISCHE REISE I-II, 1816-17 – The Italian Journey
WEST-ÖSTLICHER DIVAN, 1819 – Divan of West and East
WILHELM MEISTERS WANDERJAHRE, 1821 – Wilhelm Meister´s Travels
FAUST II, 1832 – trans. – suom. Otto Manninen
AUS MEINEM LEBEN. DICHTUNG UND WAHRHEIT, 1811-33 – Poetry and Truth – Tarua ja totta elämästäni, suom. J.A. Hollo
Collected works editions: WERKE (1887-1919, 143 vols.); WERKE (1948-64, 14 vols.); GEDENKAUSGABE DER WERKE, BRIEFE UND GESPRÄCHE (1948-71, 27 vols.); COLLECTED WORKS (1983-89, 12 vols.); SÄMTLICHE WERKE (1986-, in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