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년 선생님

그녀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해금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루의 바쁜 업무 일과가 끝나고 항상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찾는다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한 은행원도 그 중 하나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이 고요히, 그러나 수런거리며 흐르는 것을 느끼지조차 못했다. 어쩌면 그녀는, 꼭 자신의 음악 같기도 했고, 그가 설명하는 그의 고향 영동의 이미지와 닮아있기도 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자연과, 정수년 본인과, 그리고 그의 음악은 모두 하나처럼 보였다.
  
  

도무지 봄이 올 것 같지도 않을 것만 같이 추운, 2월 막바지에 다다른 오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그의 방을 찾았다. 꽃병이 화사하게 놓여있었고, 그가 따뜻한 차를 끓여주었다. 마음이 확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후에, 꽃병의 주인이 찾아왔다. 알고 보니 꽃병, 꽃 화분 몇 개가 모두 빌린 거였다. 빌려준 선생님이나, 빌린 선생님이나 모두들 민망하게 웃는데, 기자는 그 분위기가 퍽 좋았다. 꾸밈없고 정겹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박연의 고향 영동, 음악의 근간을 이루다

오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정수년은 형제간의 터울이 커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는 그를 그렇게 예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두 분다 일 하시고, 언니 오빠들이 공부하러 멀리 가면 늘 혼자였다. 조선 시대의 음악가 박연의 고향 영동은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곳’이었다. 서울과 부산의 중간에 위치해 우등열차(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구분했다고)가 서는 곳이었고, 그래서 도회지의 물결이 조금씩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영동은 폐쇄적인 곳이기도 했다. 폐쇄와 들뜬 개방의 공기가 공존하는, 이상한 공간. 그 공간은 지금까지도 그의 음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감꽃이 떨어지면 감꽃을 꿰며 놀기도 했고, 친구들과도 가끔 어울렸지만, 가장 좋은 건 하늘을 보는 거였다. 파란 하늘도 좋고, 별이 뜬 밤하늘도 좋았다. 별에 매료되어 별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별들의 신비를 음악에 담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해금으로 큰 상(전국국악경연대회 1등)을 타게 되었다. 너무나도 내성적인 그에게 있어 그건 큰 사건이긴 했던 모양이다. 자신감을 얻고, 서울에 있는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렇게 두 줄로 줄여버리기에는 이 일은 정말이지 그에게 큰 사건이다. 이 이야기를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들려주는 정수년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해금연주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소박해서 현실감이 오히려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정수년이고, 그 나지막함이 바로 음악이 되었으니, 그의 음악으로 위로를 받는 이들은 그 성격에 감사할 일이다.

무덤이라도 파헤치고 싶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국악고등학교 연습실에서 바라보는 남산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렇게, 서울살이에 익숙해지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아버지의 오래된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낡은 사진 속에서 정수년의 아버지는, 바이올린을 들고 있었다. 찰현 악기에 대한 애정은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것인가.

“아버지 이마에 푹 패이는 굵은 주름이 있었어요. 그 이마를 만지는 걸 내가 좋아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손에 남아있는 그 이마의 감촉이 여전히 생생한 거에요. 무덤을 파헤쳐서라도 다시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무대에 서는 그의 가장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여전히 올라서면 떨리는 무대,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음반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기자 또한 그 중 한 사람이고, 채근하듯 언제 내실 거냐고 물었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지만 해금에 대한 욕심만큼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는 쉽게 음악을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음반을 낸다면 1집보다 나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1집을 냈을 때는 아주 소박한 마음으로 냈는데, 그게 다른 해금 연주자들 혹은 학생들한테 이러저러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지요. 꽃별(해금 연주자)이도 2집까지 냈고. 무엇보다도 선생이라는 신분 때문인지, 해금 연주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음악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해금 소리의 빛깔, 무수한 경계들, 꿈틀거림.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그의 1집에서 가장 사랑 받고 있는 곡의 서정성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음악들은 해금의 깊은 소리, 어두운 소리까지 끄집어낸다. 가끔은 늪처럼 사람을 침잠시키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침묵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기도 하는 그의 음악적 빛깔은, 그가 생각하는 해금 소리의 빛깔을 구현하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일 것이다.

“해금 소리가 좋았던 것은 그것이 복합적인 빛깔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밝음과 어두움 사이에 무수한 경계들이 있듯이, 혹은 산이 높다가도 낮아지고, 낮다가도 높아지는 꿈틀거림을 포함하고 있듯이, 그런 것들이 바로 우리 음악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이 제 목표에요.”

이번 정동극장에서 가질 공연 때문에 이런저런 고민들을 갖고 있는 정수년, 그가 특히 이번 무대를 통해 들려주고 싶은 곡은 강준일 곡의 ‘소리그림자’라고. 그가 생각하는 ‘우리 소리의 빛깔’을 보여줄 수 있는 곡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순간 너무 평범해 보이다가도(그래서 자꾸 인터뷰라는 것을 깜박하곤 했다), 끝 모를 깊이를 드러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런 대목은 그의 놀라운 뚝심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는 스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어요. 때문에 대중들이 원하는 음악만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창작곡을 통해 해금의 가능성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어요.”

그가 어느 아침, 해금의 소리를 내어 보다가 왈칵 눈물을 쏟았듯이, 그의 음악은, ‘왈칵’의 느낌을 주는 한 순간을 제공한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노동과 사람, 삶이 마음 속에서 그려지고,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수런거림과 고요가 공존하는 이상한 순간이다. 해금은, 우리 음악은 그런 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 발견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던 정수년은 더 깊은 곳을 향한 항해를 준비중이다. 정동 극장에서 우리는 그가 발견한 해금의 아름다움과 나아갈 깊은 곳의 원경을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티켓링크 / 남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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