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것을 소리내다

외국에 나와 살다보면 여러가지 이점과 단점들이 있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점 중 하나가 바로 내가 몰랐던 나의 습관, 또는 한국인들의 문화를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중 재미있는점이 몇가지 있었는데, 예를들자면 우리는 시간을 이야기 할때 꽤 복잡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즉 1:30은 영어로 one thirty이지만 한국말로는 ‘한’시 ‘삼십’분이다. (‘일’시 ‘삼십’분이 아닌) 한글을 배우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것은 꽤 혼란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 예들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가 알지 못했던 우리의 문화의 일부분이 있다.

여기서 꽤 오래산 피아노치는 한국언니 한분이 계시는데, 영국 사업가와 결혼해서 산지 벌써 수년이다. 그 영국분은 요새 한글을 배우기 바쁜데, 언니는 한국에가면 남편을 위해 여러가지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주 쉬운 그림동화를 사다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묻기를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에서 ‘주렁주렁’이 대체 뭐냐고 했다고 한다.
조금 생각한 후 언니는 ‘주렁주렁’이 ‘주렁주렁’이지 머냐고 되려 호통을 친후 생각해보니, 정말 이런말을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더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보이는 형태, 또는 움직임을 소리로 표현하는 언어적 습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하게 알고있듯이 ‘의성어’는 사람이나 사물의 ‘소리’를 흉내내는 말이며, 이는 다른나라 언어에도 흔하게 존재한다.

여기서 친구들과 이야기할때 ‘너희나라에는 닭이 어떻게 우니?’ 라고 물으면 다들 자기나라에 닭소리를 흉내낸다. (참고로 ‘꼬끼오~’를 한번 들려주면 다들 깔깔거린다.)

그러나 ‘의태어,’ 즉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흉내내는 말은 다른나라 말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별은 반짝반짝, 토끼는 깡총깡총, 송이송이 눈꽃송이, 아기가 아장아장, 거북이는 엉금엉금, 일은 슬렁슬렁, 고개는 구비구비, 등등.

이런점을 생각해보면 우리민족은 ‘시각’을 ‘청각’적으로 표현하는데 익숙했고, 우리의 말에는 마치 노래가락처럼 이런 말들로 운율을 만들어 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단어들은 주로 반복적이고, 이런단어들을 말을 할때 어떻게 소리내느냐에 따라 그 강도도 달라진다. 앞단어를 길게 빼며 슬렁~~~슬렁. 이라고 말할때, 그냥 슬렁슬렁이라고 말할때와는 그 느낌이 아주 다르다.
그리고 그럴때에는 꼭 일종에 Vibrato를 넣어 슬렁~~~~ 이라고 소리낸다.
마치 노래하듯이 말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소리로서 감정을 표현하는것을 좋아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때 그 반응을 꼭 소리로 표현하여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있는지, 내가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또는 그렇지 않고 있는지, 거기에 대해 내 감정은 어떤지를 소리의 강약과 소리의 형태로 표현하곤 한다. 어떻게 보면 요새 TV에 나오는 방청객 소리도 우리에게는 꽤 친숙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예전 판소리에 관중들이 추임새를 넣어주었듯이 말이다.

이곳에 있는 내 친구들은 그런 한국인들의 모습에 당황할때도 많다. 곧잘 흉내내며 놀리기도 하고 말이다.

이는 음악을 하고 소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아주 재미있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더 소리에 근접한 민족인것 같아서 기쁘고 뿌듯하기도 하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 뿐만이 아닌 문화를 담고있기도 하다. 우리는 흥망성쇠를 모두 소리로 표현하였고, 즐거우면 반드시 노래를 부르고, 슬플때도 노래를 불렀다.

물론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는것이 비단 한국뿐이 아닐터. 나도 지식이 짧고 내 분야가 아니라 그 배경을 다 알수 는 없지만 말이다.

지금 예술계에서 여러가지 Audio/Visual Interaction이 각광받고 있는데,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시/청각의 연결을 생활처럼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강지연 / Composer/Sound Artist

네덜란드에서 활동중인 작곡가/사운드 아티스트.

Original post : http://som.saii.or.kr/archives/blog/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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