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의 밥상

[중앙일보 정진홍] 13년 전 오늘 새벽 성철 스님이 입적하셨다. 법랍 58세, 세수 82세였다. 그는 밤에도 눕지 않고 참선하던 장좌불와(長座不臥)의 오랜 수련 때문인지 마지막 순간에도 앉아서 숨을 거두는 좌탈(座脫)을 택했다.

그런 성철 스님의 생전 밥상은 간단하고 소박했다. 소금기를 뺀 무염식으로 반찬이라곤 쑥갓 대여섯 줄기, 얇게 썬 당근 다섯 조각, 검은콩 자반 한 숟가락 반이 전부였다. 거기에 감자와 당근을 채 썰어 끓인 국과 어린애 밥공기만 한 그릇에 담은 밥이 한 끼 공양이었다. 게다가 아침 공양은 밥 대신 흰죽 반 그릇으로 대신했다.

이런 밥상을 두고 혹자는 ‘원조 웰빙식’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성철 스님이 웰빙족이어서 그렇게 드신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는 밥을 먹되, 그 밥에 먹히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사실 성철 스님의 말씀처럼 세상에는 밥을 ‘먹는’ 사람보다 밥에 ‘먹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한마디로 주객과 본말이 뒤집힌 거다.

주객과 본말이 뒤집히면 속고 속이는 게 다반사가 된다. 성철 스님은 생전에 투박한 산청 사투리로 “쏙이지 말그래이”라고 말씀하셨다. 남을 속이지 말라는 것에 그치는 말이 아니라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불기자심(不欺自心)’이다. 남을 속이는 것이 좀도둑이라면 자기를 속이는 것은 큰도둑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큰도둑인지조차 모르고 산다. 자신을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로 볼 수 없는 것은 마음의 거울에 먼지가 잔뜩 앉아 흐려져 있어서다. 뽀얗게 먼지 앉은 거울이 사물을 바로 비출 수 없듯이 먼지 낀 마음은 자기를 속인다. 그러니 마음의 거울에서 그것들을 털어내야 한다.

성철 스님은 생전에 “이 뭐꼬?”라는 화두를 자주 던지셨다. “이 뭐꼬?”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은 자기 마음의 거울을 닦는 일이다. 결국 “이 뭐꼬?”라는 화두는 마음의 거울에서 먼지를 털고 닦아내 자기를 성찰하고, 끝내 자기를 속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스님은 “팔만대장경 전체를 똘똘 뭉치면 마음 심(心)자 한 자 위에 놓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또 “옷은 다 떨어진 거 입더라도 마음만은 절대로 떨어지면 안 된다”고도 했다. 그 마음이 해지고 떨어져 마음의 거울이 흐려지면 자기를 속이고 결국엔 자기 본래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은 세 가지 병을 이야기했다. 돈병.색병.이름병이 그것이다. 이 중 가장 무서운 것이 이름병이다. 돈병이나 색병에 걸리면 주위 사람들이 눈총을 주지만 이름병에 걸리면 내심 내켜 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론 더 박수 치고 환호해 여간해선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름병도 알고 보면 속고 속이며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병이다.

마음의 거울을 잘 닦아 자기를 바로 보면 자기 속이 금광이요, 자신이 순금임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안에 금광을 놔두고 바깥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마치 황금으로 된 집안에 있으면서 돈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성철 스님의 말씀처럼 행복은 받거나 주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다. 내 안에서 스스로 지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있는 힘껏 복짓기를 하라. 자력(自力)을 다했을 때에야 타력(他力)이 나타나는 법이다. 노력이 부족한 탓이지 굴복해야 할 운명은 따로 없다.

성철 스님은 가신 지 오래지만 그 가르침은 여전히 살아서 장군죽비처럼 우리를 내리친다. 그 장군죽비를 기꺼이 맞으면서 속고 속이며 간첩마저 활개치는 이 혼돈의 시대에 졸지 말고 깨어 있자! 그리고 음흉한 이 시대의 밥상에 먹히지 말고 우리와 후손이 제대로 먹을 새 시대의 밥상을 새로 차리자!

정진홍 논설위원 atombi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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